덕수궁 돌담길을 남들도 모르게 서성이다가 효모로 발효시킨 것 같이 빵빵하게 생긴
봉고차를 보았다. 벌컥 옆문이 열리더니 허여멀끔 기생오래비처럼 생긴 놈이 턱 하고
내린다. 그놈 참 잘 생겼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오빠아아아아!!"
우와 감짝이야.
삼지창으로 유리그릇 긁는 소리인가 했더니 웬 여학생이 지르는 괴성이었다. 그 외침은
연쇄반응을 야기했다. 여기서 꺄아아 하니 저기서 오빠아 한다. 순식간에 호응하는 곳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이윽고 빵빵한 봉고차 주위는 여인의 물결로 가득찼다.
한
여학생의 가방을 툭툭 잡아당겨 이목을 끈 후 물어보았다. 대체 저 사내가
누구냐고.
"아니 어떻게 우리 민주 오빠를, 꺄아아아아아아!! 모를 수가 있어요?
오빠아아아아아!!"
모를 수 있는 거지 그거 갖고 째려보기는. 그런데 민주?
연기잔가? 배우?
"아저씨! 우리 민주 오빠는요. 꺄아아아아아아!!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라구요.
오빠아아아아아!! 이번에 민주이즘Minjooism이라는 노래로 컴백해서 만 장이라는 판매고를 올리며 승승장구하고 있지요."
만 장…. 승승장구…. 그리고 아저씨 아니다. 그나저나 야, 그 노래
제목 참 신기허다. 민주이즘? 민주주의라는 거잖아. 내가 속으로 너털웃음을 짓고 있으려니
한 순간, 누군가가 내 이어폰을 쏙 빼어 간다. 어라 하는 사이에
이어폰은 한 여학생의 솜털 보송한 귓구멍이 곱게 들어가 있다. 남은 한
쪽의 이어폰을 통해 마침 이문세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남들도 모르게 서성이다
울었지
여학생이 갑자기 이어폰을 내팽개쳤다. 아니 왜 남의 물건을 그리
함부로…. 그러더니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친애하는 민주이즘사모 여러분! 이 아저씨가 오빠의 노래를 듣지 않아! 오빠에 대해서 알지도 못해! 민주이즘을 아끼고 존중하며 사랑하는 동지 여러분! 여기 민주이즘의 반역자가 있다! 그가 바로 늘 방청석 왼쪽 자리에서 빨강 풍선을 흔들며 안티민주짓을 하는!! 바로 좌빨이다!!"
난 당황하여 손을
내흔들었다. 나는 좌빨이 아니야!
"좌빨들이 다 그렇지. 지가 좌빨인 줄도
몰라!"
와- 하며 인의 장막이 출렁거렸다. 마치 연잇는 파도처럼 날
향해 밀려들었다. 잡히면 뒈진다. 엄습하는 위기감이 절로 내 발을 놀리기 시작했다.
대탈주. 눈이 뒤집힌 민주이즘 여전사들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탈주가 시작되었다. 여학생들이
내지르는 외침이 마지 내 뒷머리를 잡아끌듯 가까운 곳에서 연방 터져나왔다.
"좌빨을 죽여라!"
"저 아저씨 할아버지도 안티민주이즘이었다더라!"
"집안이 좌빨 집안이다!"
달리면서도
눈물이 났다. 더럽고 치사해서. 아니꼬와서. 서러워서. 히밤바 내가 억울해서 이제 진짜
안티 민주이즘 할란다. 좌빨이 뭔진 모르겠지만 저거 무서워서 저것들 틈에 끼이고
싶은 마음은 없다. 차라리 좌빨 할란다.
그 순간, 갑자기 길이
쫙 열렸다. 오오. 이건 뭐지? 열린 길 저편에 생긴 건 좀
부족한데 카리스마 넘치는 사내가 보인다. 그가 내게 손짓을 한다. 도움의 손길인가?
허나 난 방심하지 않고, 달리는 채 그의 정체부터 물었다. 그러자 그가
샤우팅하여 대답한다.
"내 이름은 아낙! 내 여친은 아낙수나문! 우리의 노래는
아나키즘Anarchism!! TV든 RADIO 든 공중파 출연 따위 없다! 팬덤도 없다!
지원도 없다! 저작권 협회에서도 탈퇴했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라이브만으로 존재한다! 함께
하겠는가?"



